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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건

당연하게 장바구니에 넣는 샴푸와 바디워시가, 늘 쓰는 스킨, 로션이 정해져 있는 게 좋다. 이리저리 따져보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한테 맞는 게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러나, 해가 넘어갈 때마다 몸 이곳, 저곳에 이상이 생기는 건 슬픈 일이다. 한쪽 눈꺼플이 어느 날부터 유독 무겁게 느껴지고, 이제는 샤워 후에 꼭 로션을 발라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건조해져 피까지 보게 된다. 인공눈물은 어느날부터인가 책상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핸드크림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만 해도 귀찮아서 챙기지 않았고, 그래도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병원에 가도, 뾰족한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어른들이 왜 그렇게 영양제를 챙겨 먹는지 점점 알게 된다. 이렇게 늙고..

INSIDE 2022.01.27

가위라도 눌렸으면 좋겠다

영혼이나, 귀신이나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하다못해 의지를 가진 영혼이라도 남는 거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불행할 리 없다. 엄마가 떠나고, 아직도 내 인생은 이렇게 진창인데. 유일하게 나를 사랑했던 가족인 엄마가 이렇게 나를 모른 척할 리 없다. 그래서 가위라도 눌려 봤으면 좋겠다. 귀신 같은 걸 보면, 엄마도 그냥 허망하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된 건 아니구나 하고 믿고 싶다. 마찬가지로 내가 죽어서도, 그게 끝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고 싶다.

FAMILY 2021.12.16

꽃, 헤어지자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헤어지자"는 말을 질릴 때까지 해댔다. 상대가 누구여도 같았다. 이로 인해, 오래도록 잊지 못할 눈물을 보기도 했고, 되려 내가 상처를 받은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거듭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나는 불안했고 믿을 수 없었다. 피를 나눈 가족도, 나를 외면하고 버렸는데 어떻게 네가 나를 사랑하겠어. 그리고 마침내 네게도 같은 말을 뱉었을 때, 너도 누군가처럼 눈물을 보였지만, 네가 되돌려준 말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아직 네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너는 내가 좋아하는 꽃이 궁금했구나. 너는 그만큼 나를 사랑했구나. 사랑하고 있구나. 어쩌면, 너는 내게 가족이 되어줄 수 ..

LOVE 2021.12.05

방황

언제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고, 동시에 머물 곳 없는 현실을 원망한다. 결국에,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더 늙기 전에 방황을 멈추고 안정적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곳에서는 지금처럼 사고가 멈추고, 아무것도 아닌 죽음으로 간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기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어제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고 싶다.

INSIDE 2021.12.04

도망

TV 속 연예인이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면, 너무 신기하다. 나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일상에서 불현듯 스치는 건, 시끄러운 교실 밖 복도, 때로는 어딘지 모를 상가의 복도를 걷던 모습이다. 벽면에 붙어서 걸었지만, 앞을 보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곳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어딘가'로 가고 싶다란 마음이 아니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교실 안 소음이 나에게는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웅웅거렸을 뿐이다. 저 소음 안에 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도망은 오랜 내 습관이다. 나는 늘 도망가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뒤에도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법이 없었다. 작은 시행착오에도 견디고, 극복하기보다는 도망을 택했다. 누가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일도 남들보다 배는 힘들어했..

INSIDE 2021.11.27

치과, 보험, 휴대폰의 공통점

나는 항상 우리 사회 법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 그로 인한 금전적 손해를 미치는 것은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이것이 INFJ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 때문인지, 개인의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치과 어렸을 때 나를 돌봐줄 어른이 없었고, 나는 혼자서 치과를 다녔다. 그 결과, 앞니와 어금니를 포함해 치아 대부분에 크라운 등의 처치가 되어 있다. 신경치료도 물론이다. 아빠는 어느 날인가, 당시에 내 치과 치료에만 수천만 원이 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불필요한 치료가 대부분이었다. 애꿎은 치아만 삭제하고 억지로 비싼 크라운을 씌운 게 많았다. 덕분에 나는 치아에 씌우고 박은 것들을 정기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평생 치과에 돈을 '꼬라박게' ..

SOCIETY 2021.11.22

23살, 처음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23살에 친구의 권유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당시 수습기자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닐 때라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상담소를 찾았다. 병원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종이를 채워 나갔던 테스트 결과가 예상보다 심각했다. 당시 상담 선생님은 이 상태가 계속되면, 몇 년 후에 인격이 나눠지거나(? 말씀 내용을 적거나 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장애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병원을 가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냥 여기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정신병원에 다니면 나중에 취업이나 이런 게 문제 생길까 봐 걱정됐다. 그렇게, 상담이 시작됐다. 매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 상담소를 가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수습기자 역할이 버거워서였고, 나중에는 비용이..

FAMILY 2021.11.2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너는 다를까

복잡하고 예민한 인간관계는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바랐고 되도록 그 누군가를 곁에 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나를 좋아하지 않는 상대로 인해 괴로워하고 눈물을 펑펑 쏟은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 마저도. "내가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 데, 너는 왜 그만큼 나를 안 좋아해?" 정도였던 것 같다. 때로는 집착이었고, 또 때로는 그 순간 많이 외로웠었다고 깨닫게 된다. 최근, 그러니깐 코로나19로 인해 남자친구와 2년 가까이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오히려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게 사랑이구나"라고 이따금씩 떠올린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왜 나는 그를 사랑하는 걸까. 그가 날 ..

LOVE 202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