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도망

ohoney 2021. 11. 27. 10:30

TV 속 연예인이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면, 너무 신기하다. 나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일상에서 불현듯 스치는 건, 시끄러운 교실 밖 복도, 때로는 어딘지 모를 상가의 복도를 걷던 모습이다. 벽면에 붙어서 걸었지만, 앞을 보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곳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어딘가'로 가고 싶다란 마음이 아니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교실 안 소음이 나에게는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웅웅거렸을 뿐이다. 저 소음 안에 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도망은 오랜 내 습관이다. 나는 늘 도망가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뒤에도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법이 없었다. 작은 시행착오에도 견디고, 극복하기보다는 도망을 택했다. 누가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일도 남들보다 배는 힘들어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당장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늘 도망친 곳도 답은 아니었다. 목적지가 없어서 였을 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목적지를 갖고, 도망친 적이 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나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외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게 있는 건 아니었다. 어설프게 나를 얽매고 있는 가족과 자질구레한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정의된 내 모든 것이 버거웠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외국에서, 홀로 사는 일이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도 그랬다. 하지만, 어차피 한국에서도 내 삶은 온전히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였다. 오히려 이런, 저런 짐을 덜어내서 홀가분했다.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건 때로는 서럽고, 때로는 두려웠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앞날은 막막했고 불투명했지만, 일상은 평온했다. 이렇게, 눈감는 순간까지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루, 하루 같은 생각으로 내 안의 작은 불안들을 모른 척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불운과 불행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시, 시끄럽고 바람 잘날 없는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매일이 다시 시작됐다.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교통과 행정 등 모든 면에서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외국에서 살면서 여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차라리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면 정말 좋겠다란 생각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내가 계속 도망치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도망칠 생각 뿐이다. 다시 평온한 하루를 원한다. 

 

외국으로 도망가기 전, 그러니깐 스물아홉의 나는 매일 울었다. 퇴근 하고 집에 오면 아주 오래전 드라마를 틀어놓고 계속 울었다. 우는 까닭이 없는 데도, 계속 우는 게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져서 억지로 드라마를 틀어 놓은 거다.

 

그리고 요즘 다시 운다. 숨막히는 현실이 무겁고, 버거워서 계속 운다. 빨리 도망가고 싶다. 제발... 

 

 

 

 

'INSI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  (0) 2022.01.30
나이가 든다는 건  (0) 2022.01.27
방황  (0) 2021.12.04